I. 교환 파견 동기
제가 전공하고 있는 영어는 세계 공용어로 손꼽히는 만큼 다양한 사람의 경험을 담을 수 있고, 동시에 제국주의와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어입니다. 이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권의 관점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기대해 왔습니다. 교환 파견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원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소수자성과 특권에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추가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도 모르게 내제화하고 있었을 인종차별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과 만나고 각자의 가치관을 나누며 식견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심해진 시기에 잠시 익숙한 공간과 꾸준히 맡아오던 일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의 자취 생활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은 이러한 희망에 꼭 맞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영국은 대표적인 식민제국과 계급주의의 역사를 지녔으며, 현재 탈식민주의 등 여러 위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차원의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운영하는 등 더 많은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비백인 성소수자 장애인으로서 직접 경험하고, 시혜적이지 않은, 당사자성 중심의 학문을 고민하고자 교환 파견을 결심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1. 파견대학/지역 선정 이유
처음에는 좋아하는 배우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스코틀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당 배우는 현대 엘리트 계층 중심으로 향유되고는 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자신의 원래 억양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스코틀랜드를 알리는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영국은 계층 차별과 억양 간 상관성이 매우 뚜렷한 국가이며, 스코틀랜드는 특히 억양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지역입니다. 자연스레 스코틀랜드 억양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이 가진 문화를 접하고 싶어졌고, 후보지를 에든버러 대학교와 글래스고 대학교 둘로 좁힐 수 있었습니다. 둘 다 매력적인 학교여서 정말 오래 고민했지만, 에든버러 대학교에 이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영국 수어(British Sign Language, BSL) 수업이 있어 이곳으로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2. 파견대학/지역 특징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로, 올드 타운과 뉴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많은 건물이 18세기의 외관을 유지한 채로 사용되고 있어 길거리가 참 아름다우며, 학교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에든버러 성이 있어 관광객으로 북적입니다.
에든버러 대학교는 최초의 영어영문학과가 세워진 곳입니다. 찰스 다윈, 알렉산더 벨, 아서 코난 도일, J. M. 배리 등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비자 신청 절차
저는 1년 동안 영국에 머무를 예정이었으므로 미리 학생 비자 신청을 했습니다. 비자 신청 시 정해진 병원에서 한 결핵 검사 결과지와, 자신이 장기간 동안 영국에 학생으로서 거주할 것임을 증명하는 서류인 CAS가 필요한데요. CAS는 교환 프로그램에 합격했을 시 주는 학번과 달리 별도로 에든버러 대학에 요청해야 받을 수 있으며, 발급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CAS와 함께 유학 자금이 들어 있는 은행 계좌가 확보되면 비자신청센터에 방문하여 여권을 제출하고, 1~3주 후 비자와 함께 돌려받으면 끝입니다. (저는 이후 에든버러 대학에 도착하여 신분증 역할을 하는 BRP 카드를 수령하였습니다만, 2025년부터는 영국이 e-Visa 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참고로 에든버러 대학은 합격 후 인적사항 기입 시 젠더 란에 ‘응답하지 않음’을 택할 수 있는데, 저는 이쪽을 택한 후 CAS를 신청했다가 여권상 성별 기재가 필요하니 추가로 알려달라는 연락을 뒤늦게 받는 바람에 발급 절차 지연을 경험했습니다. 다행히 급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여권을 일주일 안에 받을 수는 있었으나, 혹시 촉박할까 봐 많이 마음을 졸였습니다. CAS 발급뿐만 아니라 결핵 검사, 여권 재수령 모두 며칠이 넘게 걸리는 절차이므로, 최대한 빨리 진행하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또한 에든버러 대학의 행정 절차 중 발생한 문제는 자신이 기입했던 이메일 주소로 올 수도, 에든버러 대학 측에서 발급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쪽 이메일 주소로 올 수도 있으니 둘 다 자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저처럼 여권상 성별과 자신의 젠더 혹은 대명사(preferred pronoun)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CAS에만 여권상 성별을 반영한 후 정보를 폐기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 도와주시니 너무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젠더 디스포리아가 심하지는 않은 편이라, 혹시 유사한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권상 성별 정보를 유지해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2. 숙소 지원 방법
에든버러 대학교에는 굉장히 많은 기숙사가 존재하며, 가격대도 다양합니다. 다섯 곳에 지원할 수 있는데, 선호도는 표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고 싶은 곳 순으로 적었고, 첫 번째로 기입한 건물에 배정 받았습니다.) 이때 다섯 곳이란 다섯 건물이 아니라 다섯 옵션인데요, 일부 기숙사는 방 크기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방 조건보다 건물 위치가 더 중요한 경우 같은 건물의 small room / medium room / large room 모두 택하는 편을 추천드립니다. 대부분 1인실이라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지원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는데, 기숙사 소개란과 실제 지원 시 옵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이를 테면 제가 입주한 건물 소개란에는 분명 small / medium / large room(전부 1인실)이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막상 기숙사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니 1인실 small / medium과 2인실 옵션이 있는 식이었습니다. 또한 기숙사 설명에는 방에 작은 책꽂이와 세면대가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실제로 입주해 보니 방마다 옵션이 조금씩 달랐습니다(제 경우 책꽂이와 세면대 둘 다 없고, 대신 책상만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통 공용 화장실과 부엌을 3~5인이 사용하는 넓은 플랫 구조인 만큼 실제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특히 4-5인실의 경우 화장실이 2개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원 시 혼성 플랫도 괜찮은지, 동성 플랫을 원하는지 선택할 수 있으며, 기숙사 건물 전체는 혼성입니다.
기숙사 배정은 선착순이 아니라고는 쓰여 있지만, 일부 학생은 자신이 지원하지 않은 기숙사에 배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에든버러 대학 기준 2학기에 교환을 온다면 이미 입주자가 존재하는 만큼 더더욱 다른 기숙사에 배정될 수 있다고 들었으니 이 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꽤 일찍, 저렴한 기숙사에 지원하여 원하는 곳에 배정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제가 수업을 듣는 건물과 가까운지, 근처에 마트가 있는지, 같은 건물에 세탁실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후보를 선정한 다음 저렴한 쪽으로 택하였고, 학생회관 격인 Potterrow에서 3분 거리라 가장 가고 싶었던 South College Street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South College Street는 Nicholson Street 기숙사와 붙어 있는 조금 특이한 구조인데, 서울대학교 기준으로 비교를 하자면 인문대 5동과 6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둘 중 어느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든 내부는 통해 있지만, 건물 주소는 다른 식입니다. 거주해본 결과 마트는 굉장히 여러 곳에 있어서 어디에 입주해도 상관없을 것 같고, 세탁실은 정말 소중합니다. 거리 소음에 예민한 경우에는 레딧 등을 통해 기숙사 후기를 미리 검색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같은 건물임에도 Nicholson은 South College와 달리 소음이 심하다는 후기가 있어서 후자를 택했는데, 와 보니 정말 Nicholson은 도로변과 붙어 있는 반면 South College는 골목을 마주하고 있어 비교적 덜 시끄러울 듯했습니다. 다만 바로 옆집에 펍이 있어 밤에 가끔씩 크게 떠드는 사람들이 들리거나, 부엌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오기는 합니다.
3. 파견 대학 지불 비용(student fee, tuition fee, 기숙사 비용 등)
학비는 서울대 등록금만 내고, 여기에 기숙사비가 추가되는 방식입니다. 기숙사비는 위에서 적은 것처럼 건물마다 다르며, 저는 9월부터 5월까지 약 5천 파운드를 냈습니다. 식사가 포함된 Pollock Hall 등의 기숙사는 기숙사비가 두 배 정도 차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 지불 비용은 아니지만 비자 비용(결핵 검사, 영국 의료 보험비 등 포함)이 생각보다 큽니다.
4. 기타 유용한 정보
- 입국 전 미리 학교 사이트와 익숙해질 기회를 많이 만드실수록 좋습니다. 에든버러 대학은 mysnu와 유사한 사이트로 https://www.myed.ed.ac.uk/를 사용합니다.
- 환전이 되는 체크카드를 미리 만드세요. 이때 카드를 실물로만 가져가지 말고, 꼭 앱 결제까지 되도록 설정한 후 출국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은행사는 와이파이가 아닌 데이터 사용 시에만 앱 결제 옵션을 설정할 수 있게 하는데, 영국 데이터로 한국 사이트나 앱에 접속할 시 속도가 매우 느릴 수 있습니다(기숙사 위치 기준으로 LTE 속도로 잡혔는데 오류로 인식되어 앱이 꺼질 정도로 느렸습니다). 또한 환전은 환율이 낮을 때 미리미리 해 두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교환 초기에는 1800원 초반대였으나 계엄 이후 1900원이 훌쩍 넘어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현금은 생각보다 많이 쓸 일이 없으며, ATM 출금 기능이 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한다면 얻기 쉬우므로 미리 많이 준비해 둘 필요는 없습니다.
- 조별과제 시 연락망으로는 주로 WhatsApp을 사용합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가입 가능합니다.
- 로밍 대신 영국의 알뜰폰 요금제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국의 대표 통신사로는 O2, Three, EE, Vodafone 등이 있으며, 통신사마다 연결될 알뜰폰 통신사가 따로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유럽 대부분 지역 로밍 무료 및 데이터 1기가당 1파운드 정도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으니, 가격 비교 사이트 및 레딧 등의 후기를 참고하여 고르시면 됩니다.
- 친구들과 더치페이할 경우 영국에서 사용 가능한 계좌가 있으면 편한데요. Monzo나 페이팔 등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미리 조사해두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릅니다. 저는 좋아하는 작품의 촬영지 목록을 미리 정리하여 하나씩 방문했습니다.
- 입국하자마자 꼭 gmail을 만들어 두세요. 지역이 영국으로 설정된 이메일로 플레이스토어에 접속해야 각종 마트 할인 앱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방법
선착순이기는 한데, 우리나라처럼 한날한시에 모든 학생이 접속하여 직접 수강신청을 하는 형식은 아닙니다. 미리 듣고 싶은 수업 여러 개와 우선순위를 정한 후 교환학생 수강신청 폼에 입력하면 그에 맞춰 학교 측에서 한 학기당 3개를 배정해주는 식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배정받기 전까지는 해당 수업을 어디에서 언제 듣는지조차 모르게 되고, 간혹 두 수업의 시간이 겹치는 timetable clash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학기초에 시간표 수정 신청을 통해 특정 과목을 바꾸거나, 같은 수업이 여러 시간대에 진행되는 경우 다른 시간대로 옮겨달라고 재신청해야 합니다. 과목을 수정할 시 수강신청 폼과 같은 폼을 쓰게 되는데요. 새로 듣고자 하는 과목의 정원이 다 찬 경우 수강할 수 없으므로, 수강신청을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후보지 중 하나로 바꿔달라는 식의 자세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대를 옮길 시 전용 폼에 간단하 사유와 함께 희망하는 시간대의 우선순위를 기재하여 제출하면 됩니다.
영어영문학과 등 수업이 인기 많은 학과의 경우 들을 수 있는 과목 개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청하고자 할 때 폼에만 입력하지 말고 미리 교환학생 담당 사무소에 직접 메일을 보내달라고 써 있는 경우도 있어 주의하여 과목을 선정하였습니다.
2.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 Working Class Representation 노동자 계층 재현: 제가 들은 유일한 영어영문학과 수업으로, 19세기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영국의 노동자가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과목입니다. 해당 과목뿐만 아니라 에든버러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전체가 일주일에 소설 한 권씩 진도를 나가는 듯했는데, 대부분 2-300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이라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혜적이지 않은 재현, 당사자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재현은 어떤 것인지 고찰하고, 노동자 계급과 젠더는 어떻게 교차하는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노동자 계층만의 문학과 언어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기존 문학의 장르 자체가 부르주아적이므로 실험적인 서술 방식을 통해 주체적인 문학에 대한 성찰을 이끈 작품을 읽고, 남성성으로 과대표되는 노동자 재현에 대해 논하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몇 주간에 걸쳐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업은 매주 2시간 가량의 토의를 통해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되므로, 사회학에 어느 정도 관심과 배경 지식이 있어야 수업에 참여하기 수월합니다. 과제는 매주 소설에 대한 그룹 토의 진행 및 에세이 두 번입니다. 에세이는 소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 또한 직접 인용을 통해 면밀히 분석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British Sign Language 1, 2: 제가 에든버러 대학교로 교환을 오게 된 계기인 수업으로, 두 학기 모두 수강하였습니다. 농인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수어에 대한 열정이 넘치셔서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지문자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문장 구조를 익혀나갈 수 있어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에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면 풀 수 있는 쪽지 시험과 미리 준비하고 외워서 하는 3-5분간의 대화, 특정 주제에 관해 수어로 설명하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 제출 등 자잘한 과제만 있어 부담도 매우 적습니다. 음성 언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사용할 수 있던 시간이라는 점만으로도 정말 좋았습니다.
- Trauma in Society 트라우마 사회학: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주로 단일한 특정 사건을 경험한 개인이 갖게 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반박하는 수업입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억압적인 구조가 모두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며, 공동체 전체가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는 기본 구도 하에 탈식민주의, 탈자본주의, 페미니즘, 환경 운동 등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였습니다. 트라우마를 공적 경험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우리 주변에 숨쉬는 위계를 고찰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공동체에 녹아 있는 아픔의 경험을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뜻깊은 수업이었습니다. 평가는 에세이 두 개로 이뤄졌습니다.
- Mental Health in Society 정신 건강과 사회: 임상심리학 관점에서 벗어나 정신질환을 고찰하는 과목입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의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이해하고, 통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며, 사람을 환자로 병리화하는 기존의 의료 모델에서 탈피한 정신건강 접근 방법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한 학기 수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 광기학(Mad Studies) 등 비교적 최근 개념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는 점, 당사자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과목이기에 수업 내내 제 경험도 돌아보고 그간의 치료나 상담에서 갖고 있었던 묘한 불편함을 설명할 언어를 조금씩 쌓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수업이었습니다. 평가는 에세이 하나, 잡지(Zine) 만들기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부담이 덜했습니다.
- Introduction to Disability Studies 장애학개론: 장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탐색하고, 장애를 병리화하는 의학적 모델을 비판하는 수업입니다.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수업인데, 개론 수업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론이나 개념을 정말 얕게만 접하여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평가는 조별 블로그 하나와 개인 에세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세이 질문이 수업 내용에 비해 너무 방대하고 모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수업에서 참고용으로 뽑은 독서 리스트를 통해 혼자 공부하거나, 장애학에 관심이 있는 학우들과 매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습니다.
3. 학습 방법
영문학과 같이 토의로만 진행되는 수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업은 강의Lecture와 토의Tutorial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의는 대면 수업을 듣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녹화본이 올라오는데, 자동 자막이 입혀져 있어 반복하여 듣기 편합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암기해야 하는 시험이 있는 수업이 아닌 이상 녹화본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수업 내용을 혼자서 얼마나 탐구하고 있는지인 것 같습니다. 참고 도서 목록의 자료를 잘 이해하고 과제에 포함시켜 자신의 논리를 쌓아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따라서 자료 조사 기간을 충분히 갖고, 그 근거와 사례를 바탕으로 주장을 구성하여 차곡차곡 써 나가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수업 시간의 내용을 연계하여 에세이를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참고 도서 목록의 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외부 자료만 찾아 작성했을 경우 점수가 제법 깎입니다)
4. 외국어 습득 요령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으로 침묵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문법이나 발음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자리하는 만큼 다양한 영어가 오가며, 하나의 영어만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니까요! 다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대화 중에도 잠시 멈추고 사전을 찾아봅니다. 더듬거리거나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불안해질 때는 상대의 한국어 실력보다 나의 영어 실력이 더 나으며 그 이유는 영국이 제국주의로 온갖 곳을 침략하며 언어를 퍼뜨리고 다녔기 때문임을 되뇌면 기분이 나아집니다.
5. 기타 유용한 정보
- 수업은 총 10주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5주차가 끝나고 일주일을 휴강한 다음 6주차로 접어듭니다. 짧은 방학 느낌의 해당 기간은 중간 과제를 하거나 수업을 개인적으로 따라잡고 따로 공부하는 데 쓸 수 있도록 마련된 시간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 기간을 이용해서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 과제 점수의 의미가 우리나라와 상당히 다릅니다. 80점 이상을 받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90점 이상은 당장 논문으로 출판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70점 이상까지 A, 40점 이상이면 패스라고 합니다.
- 인용이 채점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근거와 심지어 세부 주장까지 참고자료에서 따와야 하고, 한 문장마다 내주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피드백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학생은 수집한 자료를 논리에 맞게 구성하는 역할 정도만 하게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영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이 내주를 쓰는 방식이 다르므로 형식에 익숙해져 있으면 좋습니다. 가령 영어 문장에서는 내주를 온점이나 반점 전에 적습니다. 참고문헌의 경우 보통 인용 방식이 통일되어 있으면 상관없다고 하며, 하버드 형식을 요구하는 학과도 있는데 그냥 APA로 적으면 됩니다. Citation Machine과 같이 참고문헌 정리를 도와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인용을 더욱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데요. 논문마다 붙어 있는 식별 번호(doi)만 해당 사이트에 입력하면 보통 자동으로 APA 형식의 출처를 만들어 줍니다.
V. 생활
1. 가져가면 좋은 물품
- 주방용품: 쇠젓가락과 요리용 실리콘 젓가락을 챙겨오는 편을 강력 추천합니다. 또한 실리콘 도마도 있으면 좋습니다. 제가 있던 기숙사에는 플라스틱 도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잘 말려도 물때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검은 자국이 자꾸 생겨서 불편했습니다. 사실 실리콘 주방용품 자체를 마트에서 잘 보지 못해서, 저와 같이 조리 도구가 거의 없는 기숙사에 배정받는다면 따로 준비를 고려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외 주방 가위도 있으면 편합니다.
- 음식: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등 기본적인 재료는 현지에서도 많이 팔고 있습니다. 아시안 마트가 학교 주변에 꽤 많고, 기본 양념은 그냥 마트에서도 곧잘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연■(비건 조미료)나 액젓은 아시안 마트에서도 팔지 않아, 작은 병 하나를 챙겨오면 좋습니다. (소고기 다시다까지는 아시안 마트에서 본 것 같습니다.) 또한 아시안 마트에서 김치를 팔기는 하지만 상당히 비싸므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건조 김치 블록 몇 개를 챙겨 오면 매우 편리합니다. 이 외 저는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챙겨와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라면의 경우 유명한 제품은 그냥 마트에도 은근히 수입되어 있으나, 한국의 비건 라면 제품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전기장판: 특히 가을, 겨울에 교환을 오는 학생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히터 난방밖에 없기 때문에 전기장판의 존재가 매우 소중합니다.
- 방수 옷: 영국은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다고 우산을 잘 쓰지는 않습니다. 부슬비 이상으로 오는 날은 드물고, 비가 짧게 오다 그치는 것을 반복하며, 무엇보다 바람이 세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외출을 자제하라는 강풍 경보만 세 번 보았던 것 같습니다. 주의보가 발동될 정도가 아니더라도 비 오는 날은 우산이 쉽게 뒤집어지고는 하니, 차라리 방수나 발수가 되는 바람막이 혹은 패딩을 꼭 챙기세요. 우산은 꼭 필요할 시 여기 와서 사도 충분합니다.
- 약 처방: 제가 출국을 준비할 때 약 먹는 교환학생의 경험을 찾기가 어려웠어서, 장기적으로 복용하거나 처방 받는 약이 있는 경우 참고할 수 있도록 경험을 공유합니다. 저는 우울증 약을 매일 복용 중인데, 흔히 정신질환 관련 약은 보통 1~4주, 길어야 3~6달 정도만 처방하는 편이라 걱정했었습니다. 다행히 교환 때문에 미리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처방전에 입력이 된다고 1년치를 한번에 주셨습니다만, 저는 이미 해당 약을 복용한 지 몇 달이 지난 상태라 복용을 단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정할 필요가 없어서 처방이 수월했을 수도 있습니다. (장기 복용의 경우에도 부작용 등은 발생할 수 있으니 꼭 중간에라도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드릴 수 있도록 미리 연락처도 받아두세요! 저도 호기롭게 약 가져가서 알아서 먹다가 교환 생활 초기에 긴장과 시차적응의 콤보로 잠이 매우 옅어졌고 악몽을 꾸는 일이 많아져서 이메일 상담 하에 복용 시간을 바꿨습니다) 또한 보통 1년 복용량에 달하는 항우울제를 구비해놓는 약국은 없어서, 보통 추가로 약을 주문해둘 테니 나중에 찾으러 오라고 말씀하시는 편이므로 출국 며칠 전에는 미리 처방을 받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공항에서는 약을 따로 검사하지는 않았으나, 혹시 모르니 영문 처방전 또한 의사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 그 외: 영국은 1년의 반은 해가 20시 넘어서 지고, 1년의 반은 16시쯤 캄캄해집니다. 빛에 민감하다면 이 점이 큰 스트레스일 수 있으므로 도움이 될 만한 제품이나 전략을 구비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기숙사 방 조명도 어두워 따로 작은 조명을 샀지만, 생활 패턴을 잡는 데 많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영국은 해리 포터 등 유명한 작품의 촬영지를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해당 촬영지가 나온 장면의 엽서를 미리 인쇄해가면 예쁜 사진을 찍기 좋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작품의 엽서나 사진을 준비해 갔습니다.
2. 현지 물가 수준
영국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이는 외식에만 해당됩니다. 장을 보고 온 후 저도 제 룸메이트들도 각자 자기 나라보다 한참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베이킹도 자주 하고 군것질거리도 많이 샀는데도 한 달 식비에 150파운드도 안 쓴 것 같습니다. 마트별로 특징을 소개하며 기숙사 입주 직후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좋은 곳을 추천하겠습니다.
- Tesco: 가장 유명한 마트로, 제 기숙사에서 1분 거리였습니다. 가격은 적당히 저렴한 편입니다. 마트 앱으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으며, 가끔 마트에서 제휴 맺은 다른 회사에 이용 가능한 쿠폰을 줍니다. 저는 덕분에 스트리밍 서비스 무료 이용권을 받았습니다.
- Lidl: 근처에 있는 마트 중 가장 저렴하며, 특히 타사 제품과 거의 똑같은 노 브랜드 카피 제품을 싸게 팝니다. (사실 볼 때마다 상표권 침해가 걱정됩니다) 저렴한 만큼 사람도 가장 많아, 특히 퇴근 시간대에는 계산대에 스무 명 넘게 줄을 설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 근처 마트 중 가장 갓 구운 빵의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마트 앱은 한 달 동안 일정 가격을 지불할 때마다 할인 쿠폰 뽑기권을 주는데, 뽑기에 기간이 있으므로 장 보고 나서 바로 들어가는 편이 좋습니다.
- Sainsburys: 위 두 마트보다는 좀더 비싼 편이고, 그래서 언제나 한산합니다. 다만 일부 제품은 Aldi라고 하는, 가장 저렴하지만 멀어 잘 못 가는 마트와 동일한 가격에 팔기 때문에 가끔씩 확인해 볼 만합니다. 특히 파스타 면 종류가 Lidl보다 훨씬 다양한데 저렴했습니다. 또한 Meal Deal이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Meal Deal이란 영국의 마트에서 곧잘 찾을 수 있는 묶음 제도로, 끼니, 간식, 음료에 해당하는 상품을 모두 사면 할인을 해주는 상품인데요. 우리나라 편의점 샌드위치나 도시락 같은 느낌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마트가 끝나기 몇 시간 전에 가면 일부 제품에는 저녁 할인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 Edinburgh Bargain Shop: Potterrow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가게로, 온갖 물건을 다 팝니다. 샴푸, 세제 등은 Lidl이 더 싸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살 필요는 없지만, 침구류, 빨래바구니, 식기, 옷걸이 등 막 기숙사에 입주했을 때 필요한 물건을 모두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접시도 여기에서 살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길거리에 있는 charity shop에서 사는 편을 추천합니다. Charity shop이란 말그대로 모금을 위해 물건을 파는 가게로, 간판에 비영리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보통은 기증된 중고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만큼 정말 다양한 물건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British Heart Foundation, Save the Children, People's Dispensary for Sick Animals 등의 단체가 Charity Shop을 운영합니다.
3. 식사 및 편의시설 (식당, 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 식당: 에든버러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매우 비건 프렌들리하다는 것입니다. 마트에서 대체육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식당에 비건 메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순대와 유사한 해기스나 블랙푸딩까지 비건식으로 접할 수 있는데, 맛도 비슷하거나 더 좋습니다.
- 의료: (*NHS 가입 기준의 경험입니다) 저는 비자에 의료보험비가 포함이 되어 있어 입국하자마자 NHS에 등록했습니다. NHS는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병원이 특정 지역구를 맡아 운영하는 식인데요. 검색하여 본인이 어떤 병원에 등록할 수 있는지를 찾고, 해당 병원에 직접 자신을 등록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며 해당 병원이 담당의(GP)가 됩니다. 다만 현재 NHS 예산이 많이 부족하여 인력난이 심각한 만큼 빠른 진료나 연락이 어려운데요. 제가 등록한 병원의 경우 따로 이메일이 가지 않으면 GP 등록이 제대로 된 것이니 폼 제출 후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써 있었으나, 몇 달 뒤 다쳐서 NHS에 전화했을 때에야 제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NHS의 특징은 무료 진료를 보장하는 만큼 응급 상황이 아닌 경우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사를 만나려면 응급 환자 외에는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하고, 2주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119 같이 응급 환자가 전화할 수 있는 경로와 별개로, 위급하지 않으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전화 서비스를 통해 간단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화 연결을 위해 10분에서 30분 정도 대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발목을 심하게 삐었을 때와 몸이 제대로 가눠지지 않을 정도의 어지럼증이 생겼을 때 총 두 건으로 전화를 했는데요. 전자의 경우 다친 경위와 아픈 정도를 묻고는 집에서 찜질을 하고 쉬다가 조금씩 걸어보라는 조언을 받았고, 후자의 경우 상담사분이 연결을 끊지 않은 상태로 40분 정도 동안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시더니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에 당일 예약을 잡아 주셨습니다. 야간 진료도 다른 진료와 마찬가지로 무료였으며, 약 처방까지 공짜로 받았습니다.
예약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은 감기 등으로 급하게 병원을 찾기도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마트나 약국에서 바로 약을 사야 하는데, 약국은 Boots 같은 곳이 아니면 NHS 밖의 유료 진료 병원을 겸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비싼 편입니다. 상비약은 미리 챙겨가는 편을 추천합니다.
- 은행: 보통 앞에서 서술한 여행용 카드로 충분히 생활 가능하며, Monzo 등은 혼자서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 교통: 에든버러는 경사와 계단이 많아 배리어프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버스의 경우 휠체어 이용자 자리가 따로 확보되어 있는 등 신경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스코틀랜드에 반 년 이상 거주하는 만 22세 이하 학생의 경우 Young Scot라는 카드를 발급받으면 스코틀랜드 내 모든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을버스뿐만 아니라 공항버스, 고속버스 등 출발지와 도착지가 스코틀랜드인 모든 버스 포함입니다.(*물론 관광버스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버스이므로 제외됩니다)
- 통신: 데이터는 길거리에서 간혹 끊길 때가 있습니다. 연결이 약해서 되다 말다 하는 느낌은 아니고, 특정 구간에서는 항상 신호가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건물 안에 있을 시에도 데이터는 잘 작동하지 않아 와이파이를 바로 찾게 됩니다. 기숙사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eduroam을 사용하여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에든버러 대학교 계정으로도, 서울대학교 계정으로도 접속됩니다.
- 빨래: 저는 기숙사에 세탁기가 있었는데, 건물 전체가 세탁기 세 대와 건조기 세 대를 함께 쓰기 때문에 주말에는 잘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코인 세탁기 형식으로 앱 혹은 전용 충전 카드를 통해 결제 가능한데, 앱이 오류가 자주 나 카드 없이는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잦습니다.
- 마트: 영국 마트의 셀프 계산대는 모든 물건의 무게를 잽니다. 상품 하나의 바코드를 찍고, 지정된 자리에 내려놓았을 때 올바른 무게가 인식되어야 그 다음 물건을 찍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이에 오류도 많이 일어나는 만큼 익숙해지기까지 좀 걸립니다.
4. 학교 및 여가 생활 (동아리, 여행 등)
개학 직전 및 학기초에 많은 동아리들societies이 소개 프로그램에 참가합니다. 동아리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체험할 수 있는 짧은 원데이 클래스 느낌의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스코틀랜드 전통 춤인 Ceilidh 동아리로, 기본적인 동작을 익힌 후 바로 실전에 들어갔습니다. 강강술래와 비슷한 느낌인데 계속 발을 차거나 뛰어야 해서 무척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학생회 사이트 eusa.ed.ac.uk에 모든 동아리들 소개가 적혀 있으니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이트를 통해 해리 포터 동아리에 가입하여 지팡이 DIY, 마녀 관련 가게 투어 등의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신경다양인 커뮤니티, 성소수자 커뮤니티 동아리도 있어, 경험을 나눌 사람이 필요할 때 동아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연극 동아리, 스포츠 동아리 등이 있습니다.
학기초에는 동아리와 무관하게 학교 측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에든버러 도시 투어가 그것인데요. 에든버러의 유명한 관광지를 함께 방문하는 투어는 물론, 좋은 산책길이나 카페 탐방, 초콜릿 만들기 체험 등 무척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 취향 따라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기 내내 주말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펍 퀴즈 등 행사가 계속 있으니 학생회 사이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좋습니다.
한편 학교 밖에서 여행을 다니는 경우 교통편이 가장 중요할 텐데요. 버스(coach)가 가장 저렴하고, 기차는 간혹 국내선 비행기보다 비쌀 때도 있다고 합니다. 기차를 자주 이용할 경우 레일카드를 구입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레일카드로 기차표를 구매하여 런던에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을 보러 다녀오기도, 옥스포드, 요크 등 다양한 도시에 들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스코틀랜드의 가장 유명한 명소를 꼽자면 네스 호가 될 것 같은데, 여기는 하이랜드 당일치기 버스 투어를 통해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하고 효율적입니다.
5. 안전 관련 유의사항
치안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소매치기를 경험한 적도 없고, 심지어 카드를 바닥에 떨어뜨려 잃어버릴 뻔한 경험이 두 번이나 되는데 둘 다 떨어뜨린 자리에서 바로 찾았습니다. 다만 디지털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사용하므로 건물 문이 잘 닫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간혹 외부인이 건물에 들어올 수는 있습니다. 이 경우 기숙사 담당 조교나 사무실에 연락하면 됩니다.
기숙사 소방 사이렌이 자주 오작동합니다. 보통은 고데기 등에서 발생한 연기가 감지된 경우입니다. 사이렌 오작동이 큰일로 느껴지는 이유는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건물의 모든 사람이 무조건 대피해야 하며, 대피하지 않은 경우 벌금을 내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부엌 감지기는 연기가 아닌 열에 발동되기 때문에 실수로 음식을 조금 태웠다고 사이렌이 울리지는 않습니다.
사이렌 오작동에 예민한 것치고 실내 흡연을 개의치 않아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연기 감지 때문에 보통 방에서 피우지는 않고, 가끔씩 부엌에서 창문을 열고 피우는 편입니다. 이 경우 보통은 전자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냄새가 크게 남지는 않겠지만, 혹시 민감한 경우에는 룸메이트와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6. 기타 유용한 정보
- 잉글랜드나 대부분의 유럽과 달리 스코틀랜드 수돗물에는 석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사용합니다. 따로 물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 스코틀랜드는 또한 복지 차원에서 생리대가 무료입니다! 카페나 학교 건물 화장실에도 생리대가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Potterrow에는 아예 무료로 생리대, 탐폰, 생리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해두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트에서 생리대를 팔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 에든버러 대학교에는 다양한 장애 지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해당 지원은 장애인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으며, 정신질환으로도 학습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우울증 사유로 모든 과제에 일주일 유예 기간을 보장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과제에 필요한 업무 세분화를 요청하는 등 지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에든버러 대학교에서도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4회차로 한정되어 있으며, 필요시 다시 신청해야 합니다. 다만 필요할 때마다 기숙사 쪽으로 상담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상담은 짧은 만큼 특정 목표를 갖고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낯선 곳에 적응하며 느낀 고민이나 소외감에 대해 상담사분께서 평가 없이 정말 잘 들어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한국 근현대사와 연관이 있던 과제를 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때 소견서를 작성하여 추가 유예 기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셨습니다.
Ⅵ.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친숙한 환경과 친밀한 사람들을 모두 떠나 낯선 곳에 거주하는 내내 어딘가 허전했고 그래서 더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시간을 자유롭게 흘려 보내며 그동안 쌓여 있던 고민을 돌아보고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정체성을 풀어낼 언어를 수업에서 배우고, 새로운 복지 시스템을 체험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소수자성을 학문으로 소화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이 1년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언어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소중한 기회에 정말 감사합니다.